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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박형근 개인전 - Tenseless

2015.10.08 - 11.04
Hyung-geun Park





“본래부터 나의 몸 안 어딘가에 있어 왔을지 모를 감각의 끝에 실을 걸고, 세상의 결과 면을 연결해 나가는 일, 닫힌 틈을 열고 침잠할 수 있는 밝은 눈을 되찾는 것이 사진하는 이유였다.” (박형근, 2015)

 

박형근 작가가 2004년부터 진행해 온 사진 연작 <텐슬리스(Tenseless)>의 최근 작품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이 연작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이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의 세계에서 사진은 늘 과거이다. 그것을 마주할 때 이미지는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존재했던 대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진을 바라보는 이는 결과로서의 사진 앞에서 ‘거기 무엇이 존재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와 같이 이미지의 전후 맥락에 대해 질문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박형근 작가의 텐슬리스 시리즈를 마주할 때, 그런 습관적 질문에 대한 답은 당혹감으로 돌아온다. 사진을 지배하는 강렬한 색감, 낯익은 듯 낯선 분위기의 풍경, 어떤 단서처럼 놓여 있지만, 관계성을 읽어내기 힘든 정물의 조합은 우리가 아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교란시키며, 구체적 장소도 시간도 초월한 무엇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안의 세계는 매우 사실적이지만 실재하는 세계가 아닌,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경계가 사라진 상상의 세계이다. 텐슬리스의 작품의 완성은 사진이 찍히는 순간이 아니라, 마지막 붓 터치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화가처럼 작가 자신이 발견하고 선택한 대상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만들어 내는 순간이다.
 
여기 눈 내린 호숫가에 배가 한 척이 놓여 있다. 어스름한 회색 공기는 이른 새벽, 혹은 흐린 오후처럼 창백하다. 그 옆에 배가 몇 척 더 보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돼 보인다. 이 공간은 한참 동안 내버려진 듯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짐승의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 멀리 호수 위 섬처럼 떠 있는 작은 집 한 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생명의 존재를 암시하는 연기는 문득 풍경에 온기를 더한다. 이 사진의 제목은 ‘Sihwa 시화’이다. 실제 지명 시화호를 의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말 그대로 작가가 사진으로 그려낸 시화(詩畵)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아련히 피어오르는 연기를 호수 저편에 추가시킴으로써, 우리가 서 있는 황량한 땅 위에서 저 너머 세계로 시선을 유인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바니타스식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진분홍 꽃이 담긴 화병과 핏빛 붉은 물감이 흘러내리는 테이블이 놓인 음침한 실내 풍경이 시선을 압도하는 작품 ‘His objects’에서도 창밖에서 들어오는 은은한 빛의 존재는 한발 늦게 우리의 눈길을 끌지만, 더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이런 식의 구조는 ‘4 AM’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건물의 모퉁이를 경계로 오른쪽 어둠이 지배하는 담벼락 공간에서는 나무의 그림자가 기묘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모퉁이의 왼편, 즉 건물의 뒤편에서는 알 수 없는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마치 동굴의 바깥 저편에 이데아의 세계가 빛나는 듯.

박형근 작가는 실재하는 공간에 ‘물리적인 개입 혹은 조작’을 통해,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세계를 프레임 안에 창조하고 있다. 이로써 그의 사진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 현실의 표피를 담아내는 사진의 한계를 넘어서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게 된다. 또한, 현실 이면의 세계를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죽은 새, 썩은 열매, 떨어진 꽃잎, 쏟아진 물감, 나무 위에 얹혀진 염소의 두골과 같은 것들은 불길한 느낌을 주는 사물 혹은 우리가 꺼리는 상황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순간 묘한 느낌에 매혹되어 눈길을 떼기 어렵다. 아름다움 때문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작가는 치밀하게 계획된 연출로 프레임 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통념을 넘어서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하여 오히려 반문한다. 박형근 작가의 ‘시제가 없는’ 사진은 사진의 기본 전제인 시간과 공간, 즉 우리가 가진 사고의 고정적 틀을 깨고 ‘닫힌 틈을 열고 침잠할 수 있는 밝은 눈’을 통해 대상을 바라봄으로써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배세은 (갤러리잔다리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