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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주 개인전 - 열 번의 총성 Ten Single Shots

2013.11.14 - 12.13
Jungju An



게임의 법칙


   안정주의 개인전 <열 번의 총성>에 전시된 작품들은 게임 또는 놀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되어 있다. 어렸을 적 고무줄놀이를 했던 사람이라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바로 이 노래 ‘전우야 잘 자라’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하는 모습을 담은 동명의 싱글 채널 비디오 <전우야 잘 자라>는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고무줄놀이를 할 나이가 한참 지난 성인 여성 두 명이 어린 시절을 추억하듯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고무줄을 발목 높이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머리끝까지 올린다. 이 노래에 맞춰 또 다른 두 명의 여성은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고무줄이 발목에서 머리로 점차 올라갈수록 작가가 삽입한 노래 가사도 화면의 아래에서 위로 함께 올라간다. 고무줄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여성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는 가사의 군가(軍歌), 그리고 화창하면서도 평안한 어느 오후. 이 부조리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테이블 축구 경기에 몰두하고 있는 소년들을 담은 작가의 이전 작업 <Their War I – Ethiopia>(2005)가 떠올랐다. 소년들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상을 보는 관객은 칠이 벗겨진 낡은 축구 경기 테이블과 주변의 황량한 풍경으로 눈길을 옮기며, 이 놀이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가임을 추측하게 된다. 하지만 편집을 통해 소년들의 움직임이 절도 있는 댄스로, 놀이 기구를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소리가 타악기의 리듬으로 변화하는 후반부의 영상은 그들의 빈곤한 삶이 경쾌한 삶으로 변모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우야 잘 자라>와 <Their War I>에서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여러 요소들의 조합은 게임의 규칙을 변경하지 않으면서도 판(板)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견고한 ‘작전’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안정주는 판을 새로 짜기 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판을 교란시키는데 관심을 보여 왔다. 갑자기 영상을 정지하거나 반복하고 실제 소리에 기계적 조작을 가하거나 새로운 사운드를 덧입히는 방식은, 컨베이어 벨트에 빼곡히 실린 채 이동하는 병들(<The Bottles>, 2007)과 제식훈련 중인 중국의 병사들(<Drill>, 2005)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에게 녹색의 유리병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물을 표상하는 물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계의 움직임,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어우러진 미학적 오브제로 느껴질 수 있다. 한편 3채널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시청각을 압도하는 <Drill>과 직면한 관객은, 영상과 사운드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화면 속으로 몰입하며 이 작품을 뮤직비디오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어떤 관람자는 스펙터클한 스크린 속의 군인들에 집중하면서 집단의 동일성과 규율의 강조를 극대화한 작업으로 <Drill>을 해석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작품이 읽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는 <전우야 잘 자라>에서도 계속된다. 작가가 서브타이틀의 형식으로 영상에 개입시킨 노래 가사는 관객이 영상만을 보는 것에 비해 2013년이라는 현재의 시간과 놀이에서 연상되는 시간의 불일치, 즐거운 분위기와 심각한 가사의 부조화를 증폭시킨다. 안정주는 서브타이틀이 잘 보이도록, 그리고 관객이 직접 고무줄놀이를 보고 있는 듯한 현장감을 연출하기 위해 스크린을 관객의 머리 위에 설치하였다. 비스듬한 각도로 설치된 스크린을 올려다보는 관람자는 놀이의 장(場)과 전시장, 과거와 현재, 작품과 관객, 죽음과 유희가 뒤섞였다가 분리되고 또 다시 맞닿는 ‘게임’ 의 한 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
   관람자를 작품의 일부로서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설치 방식과 공간 배치는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특징이다. 좁고 긴 복도의 끝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어린이는 그 복도를 따라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을 놀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뒤를 도는 순간, 아이의 동작은 슬로우 모션으로 바뀌면서 복도를 걸어오는 관람자를 찬찬히 관찰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술래는 내가 움직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않은 채 다시 고개를 돌리고 놀이를 반복하며, 시간은 원래의 속도로 되돌아간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움직이는 관객을 작품으로 수용하기 위해 작가가 놀이의 규칙과 시간의 흐름을 변경하자 새로운 규칙이 생겨났다. 술래는 화면 속의 어린이로 고정되고, 스크린을 향해 다가가거나 멀어지는 관람자는 영원히 술래가 될 수 없다. 이 놀이의 유래로 거론되는 속설들 중 어린이들에게 국화(國花)를 알려주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무궁화 꽃을 놀이의 이름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제 게임의 규칙은 달라졌고, 무궁화 꽃은 더 이상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동일한 영역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만날 수도, 서로의 역할을 맞바꿀 수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구조화된 통념이나 전체에 대한 헌신을 역설적인 상황으로 뒤바꾼다는 점에서 <One for all, all for one>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흡사한 특성을 지닌다. 단체 줄넘기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기록한 이 작품은 전체의 움직임을 담은 영상과 부분을 클로즈업한 영상으로 구성된 2채널 비디오 형식이다. 목소리와 행동을 하나로 맞춰야 목표로 세운 줄넘기 개수를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인 단체 줄넘기는, 놀이와 제식훈련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또한 다수의 인원이 동시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고무줄놀이에 비해 조직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일치된 호흡이 중요시된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제식훈련처럼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줄에 걸리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모래 한 가운데 꽂아 놓은 막대기가 쓰러지면 웃으면서 모래를 모아 언덕을 만들고, 다시 막대기를 꽂으며 놀이를 반복하는 <Sandcastle>(2012)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훈련이 아닌 게임이므로 리셋이 가능하다. 계속되는 실패를 아쉬워하면서 줄넘기를 시도하다가 마침내 목표를 달성한 학생들은 승리의 환희에 넘쳐 서로를 얼싸 안는다. 공동의 성공을 향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단체의 일부로서 동질화된 구성원이면서도 개개인의 개성을 부각시키는 영상은 작가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보는 이에게 선명하게 전달한다.
  앞서 언급한 세 편의 작품들이 기존의 놀이를 소재로 다루었다면, 이 작품들과 독립된 별도의 공간에 설치된 <열 번의 총성>은 작가가 법칙을 정한 새로운 게임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지금까지 안정주의 영상 작품들에서 기록의 속성이 우세했다면, 이 작업에서는 극(劇)적인 속성이 강화되었다. 전시장의 벽면을 가득 채운 여섯 개의 흑백 스크린에는 각기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무용을 전공한 배우들에게 이미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총소리가 들리면 본인이 그 소리에 맞춰 어떠한 움직임과 표정을 지어야 할지를 고민해달라고 주문하였다. 배우들은 자신이 연기할 동작을 직접 만들었고 카메라 앞에서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동일한 행동을 반복했다. 작가는 이렇게 열 번의 테이크를 진행했고 각각의 테이크에서 일부분만을 선택하여 하나로 편집한 완성본을 제작하였다. ‘모두를 위한 하나’의 영상이자 ‘하나를 위한 모두’인 영상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시간을 느리게 조작한 <열 번의 총성>에서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은 폭탄이 폭발하는 소리처럼 길게 늘어져서 들리는 총성의 사운드이다. 총소리는 배우의 연기를 촉발하는 신호이면서 한 테이크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단위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 총소리에 맞춰 배우가 행한 동작은 열 번의 테이크마다 모두 똑같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어떤 인물의 움직임은 한 번에 촬영한 장면처럼 유려하게 흘러가는 반면, 반대의 경우에는 하나의 동작이 분절된 여러 동작으로 보인다. 한편 흑백의 화면은 이 작품에 세월의 무게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를 현실과 분리시켜 관람자로 하여금 이것이 연기 중인 상황임을 주지시킨다. 그러나 영상과 사운드로 가득 찬, 넓지 않은 갤러리 공간에 들어 선 관객은 이 상황이 실재가 아니고 작가가 연출한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물들의 표정 연기와 춤추는 듯한 움직임에 빠져들게 된다. 또한 여섯 개의 스크린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스크린 앞을 오가며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데, 이러한 영상 설치 방식은 작품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하나의 작품을 각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다층적인 해석을 유도해 낸다. 
   이번 전시에서 안정주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판에 균열을 내고, 때로는 판을 새로 만들면서 그 어떤 절대적인 존재와 개념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그 무엇도 단일한 의미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건넨다. 작품을 매개로 한 작가와의 대화 속에서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 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고 있는지, 혹은 부분에 집착한 나머지 전체를 간과하지는 않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경우에 대해서도 말이다. 



안경화(백남준아트센터 학예팀장)